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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은 199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솔직히 절반쯤에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슬프지도 않은데 뭔가 꽉 찬 것 같은 그 감각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 '엄마 찾기'가 아니라 '외로움의 구조'
표면적인 플롯(plot)은 단순합니다. 여기서 플롯이란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배열된 이야기의 뼈대를 말합니다. 엄마를 만나고 싶은 초등학생 마사오, 그 여행에 끼어든 중년 남자 기쿠지로, 그리고 한여름의 이동.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발견한 건, 플롯이 사실상 껍데기라는 점이었습니다.
마사오가 엄마를 찾아갔을 때 영화는 냉정합니다. 엄마에게는 새 가정이 있고, 마사오를 기다리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타노 다케시는 이 장면을 신파(新派)적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신파란 감정을 과장하고 눈물을 유도하는 연출 방식을 뜻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어디에도 그런 장치가 없습니다. 카메라는 그냥 멀리서 바라볼 뿐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다고 느낀 지점은 기쿠지로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도박으로 여행 경비를 날리고,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인물이 마사오보다 훨씬 더 크게 변합니다. 기쿠지로 역시 어머니에 대한 상처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사오는 엄마를 찾으러 갔지만, 기쿠지로는 사실 자기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러 간 셈입니다.
이걸 영화 이론에서는 서브텍스트(subtext)라고 부릅니다. 서브텍스트란 대사나 행동의 표면 아래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나 감정의 층위를 말합니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이 서브텍스트가 플롯보다 훨씬 두꺼운 영화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여름'인 겁니다. 이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쪽은 어른인 기쿠지로이기 때문입니다.
Los Angeles Times의 케빈 토머스는 이 영화의 건조한 유머와 거리 두기식 연출이 오히려 감동을 만들어낸다고 평가했습니다(출처: Los Angeles Times).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감정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데 감정이 남는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점입니다.
- 플롯: 엄마를 찾아 떠나는 소년의 여행 — 그러나 목적지에서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서브텍스트: 기쿠지로도 '버려진 아이'였다 — 마사오와 거울 구조를 이룬다
- 연출 방식: 신파 없이 감정을 축적하는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정적 미학
- 제목의 진짜 의미: 이 여름이 마사오보다 기쿠지로에게 더 결정적인 이유
히사이시 조의 〈Summer〉와 기타노 연출의 역설: 왜 비판도 틀리지 않았는가
히사이시 조의 음악, 특히 〈Summer〉를 빼고 이 영화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봤는데, 이 곡은 장조(長調, major key)로 쓰여 있습니다. 장조란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드는 음계 구조를 말하는데, 그런데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쓸쓸합니다. 음표 하나하나는 분명히 밝은데 전체적으로는 어딘가 텅 빈 느낌입니다.
이 역설이 영화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화면 속에서는 계속 웃기고 엉뚱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음악은 "해는 뜨고, 길은 이어지고, 여름은 계속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흘러갑니다.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음악은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의 음악은 슬픈 장면에 슬픈 음악을 깔아주는 것보다 훨씬 오래 남습니다. 이걸 영화 음악에서는 대위법적 음악 사용(contrapuntal music use)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화면의 감정과 반대되거나 비틀린 음악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기법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은 상당히 엇갈렸습니다. Roger Ebert는 기타노의 스타일은 인정하면서도 소재와 연출의 결합이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봤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매력과 멜랑콜리가 있지만 지루한 구간이 너무 많고, 기타노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방향 전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비판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타노는 《소나티네》나 《하나비》에서 미장센(mise-en-scène)을 극도로 절제하는 감독으로 알려졌습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된 인물, 조명, 배경, 카메라 거리 등 시각적 구성 요소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감독이 코미디와 동심(童心)을 다루니, 차가운 카메라와 따뜻한 소재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어떤 장면은 그 충돌이 독창성이 되고, 어떤 장면은 톤이 어긋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가 이 영화를 명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마지막에 기쿠지로가 마사오에게 천사 모양 방울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영화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방울 하나로 마사오에게 "한여름의 기억"이 생깁니다. 상처를 없애주는 게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 저는 이게 이 영화가 주는 위로의 정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기쿠지로의 여름,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전통적인 의미의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마사오의 엄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기쿠지로의 삶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마사오에게 한여름의 기억과 작은 방울 하나를 남겨줍니다.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지만, 살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방식의 마무리입니다.
Q. 히사이시 조의 Summer, 왜 그렇게 유명한 건가요?
A. 장조로 쓰였지만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 대위법적 구조 때문입니다. 화면에서 웃긴 일이 벌어져도 음악은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충돌이 오히려 영화의 정서를 오래 남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를 안 본 사람도 이 곡만 들으면 여름의 외로움 같은 게 느껴진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Q. 기쿠지로가 좋은 어른인지 나쁜 어른인지 헷갈립니다.
A. 영화는 그 경계를 일부러 흐립니다. 기쿠지로는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아이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마사오에게 정이 들면서 조금씩 보호자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정이 들어서 조금씩 좋은 행동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Q. 기타노 다케시 영화 처음 보는데 이 영화부터 봐도 될까요?
A. 기타노 입문작으로는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소나티네》나 《하나비》에 비해 폭력성과 정적이 훨씬 줄었고, 이야기 자체도 비교적 따라가기 쉽습니다. 다만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초반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여름 오후에 천천히 감상하는 걸 권합니다.
결론
《기쿠지로의 여름》은 제가 본 영화 중에서 "슬프지 않은데 슬픈" 감각을 가장 정확하게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신파 없이 감정을 쌓고, 플롯 없이 이야기를 완성하고, 해결 없이 위로를 건네는 방식이 놀랍습니다. 비판처럼 느릴 수도 있고 기타노의 스타일과 소재가 충돌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충돌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기쿠지로와 마사오, 두 사람 모두 결핍을 안고 시작해서 결핍을 안고 돌아갑니다. 달라진 건 결핍이 아니라, 그 여름을 함께 보냈다는 기억 하나입니다. 저는 그게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먼저 들어보고 영화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A%B8%B0%EC%BF%A0%EC%A7%80%EB%A1%9C%EC%9D%98%20%EC%97%AC%EB%A6%84